top of page

노재헌 원장, “中 정부가 영화 판권 무상으로 줘… 韓·中수교 이룬 아버지 덕 좀 봤죠”

  • EACC
  • 2016년 9월 24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11월 6일



영화로 韓·中 문화교류

중국의 과거와 현재 영화가 압축적으로 보여줘

작년 中영화 800여편 제작… 한국에 상영된 건 40편뿐


아버지는 홍콩 무협영화광

아버지 심부름으로 비디오 테이프 자주 빌려와

청와대에서도 종종 가족·직원들과 영화 관람


어릴 땐 야구선수가 꿈

내가 뭘 정해놓는다고 그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살다보면 새 임무·사명이 주어지는 것 같아


입력 2016.09.24. 03:00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이 서울 롯데월드타워에 중국영화 전용 상영관을 열었다. 영화관에 앉은 노 원장의 모습이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빼닮았다. 노 원장은 “아버지가 이룬 한·중 수교 후 24년이 지나 아들이 한·중 영화 교류를 위해 뛰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흐뭇해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노재헌(51) 한중문화센터 원장은 최근 중국 영화에 빠져 있다. 그는 롯데시네마와 손잡고 지난 8월 18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 중국 영화 전용 상영관 '실크로드 시어터'를 열었다. 이곳에선 앞으로 1년간 중국의 근·현대 영화를 상영한다. 거의 대부분 중국 정부가 판권을 가진 영화들로, 노 원장이 직접 중국 문화부 부부장(차관) 등을 만나 상영 허가를 받았다.


27일 정식으로 개관식을 여는데 영화배우 안성기, 중국 장지량 감독, 추궈홍 주한중국대사,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노 원장은 노태우(84) 전 대통령의 외아들이다. 지난 5일 실크로드 시어터에서 만난 그는 "전(前) 대통령 아들이 이런 일을 왜 하나 싶죠?" 하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조용히 살고 있고 또 살고 싶은 사람인데, 중국 관련해서는 내 면(面)이 좀 깎이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요."


―왜 그렇습니까.

"한·중 관계가 중요하니까요. 특히 문화 교류를 통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같은 난제들을 풀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문화교류 중에서도 왜 중국 영화인가요.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니까요. 그런데 한국에선 중국 영화 볼 기회가 예전보다 적잖아요? 작년 중국에서 80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됐는데, 한국에서 상영된 건 40편에 불과해요. 흥행도 잘 되지 않았고요. 그래서 전용관을 만들어 좋은 영화를 지속적으로 소개하면 중국에 대한 이해도 늘고, 양국 문화 교류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롯데시네마에서 협조를 잘 해줘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원래 중국 영화를 좋아했나요.

"저는 영화에 빠져서 보는 스타일은 아닌데요, 4년 전부터 한중문화센터 일로 중국을 자주 오가는데 비행기 안에서 중국 영화를 많이 보게 됐죠. 생각보다 재미있고 좋은 영화가 많더라고요."


―어떤 영화가 특히 인상적이던가요.

"'사과(苹果)'라는 작품인데, 베이징 발마사지숍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남편인 중국 농민공(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빈곤층 노동자), 발마사지숍 주인 등의 얘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입니다. 전용관에선 당분간 첸카이거, 황젠신, 장이머우, 서극 등 유명 감독의 작품을 주로 소개할 예정인데 '사과'도 꼭 상영하고 싶어요."


―중국 정부의 협조를 얻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는 쉬웠어요. 작년 6월 중국 문화부 부부장을 만났더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도와주더군요. 중국 미디어를 총괄 감독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을 통해 중국 정부가 가진 영화 판권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홍콩 무협영화광"

27일 정식 개관식을 여는 중국 영화 전용 상영관 ‘실크로드 시어터’ 앞에 선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2년 8월 24일 중국과 최초로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탕자쉬안 중국 전 외교부장은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한다)'이라는 고사를 인용하며 "중국 인민들은 한·중 수교를 위해 노태우 대통령이 기여한 공헌과 업적에 대해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니까 이런 일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수교 당사자셨다는 점 때문에 중국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죠. 저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도 있어요. 아버지께서 한·중 수교를 이루셨으니 저는 양국 관계를 더 긴밀하고 실질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노 전 대통령이 영화를 좋아했다고요.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연애하면서 보셨던 영화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2011년 직접 쓰신 회고록에 보면 애수, 젊은 사자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싱고알라 등을 어머니와 함께 봤다고 쓰셨죠."


―영화와 관련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아버지께서는 홍콩 무협영화광이셨어요. 밤늦게 귀가하시면 '측천무후(則天武后)' 같은 시리즈물을 혼자 보셨어요. 제가 비디오 테이프 대여 심부름을 했는데, 동네 비디오가게에 있는 홍콩영화를 다 빌려 봐서 새 테이프 구하느라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요?

"아니요. 그전에요. 대통령 되고 나서는 정말 바쁘셨죠. 그래도 종종 청와대에서 영화를 보셨어요. 식구들뿐만 아니라 청와대에서 일하는 분들하고 같이요."


―노 전 대통령 건강은 어떠신가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죠. 중국 수교 이후 24년이 지나 아들이 한·중 영화 교류를 위해 뛴다고 생각하시면 흐뭇해 하실 것 같아요."


―노 전 대통령 회고록에 보면 "어쩌다가 내가 정치하는 팔자가 되어 아내를 고생시키는가 하고 마음을 태우기도 했다" "청와대에서 간혹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될 때면 과거 단란했던 우리 가정의 모습이 떠올라 그립게만 느껴졌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아버지가 군인으로만 살았더라면 하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아버지는 전혀 세속적이지 않은 분이었어요. 아들인 저로서도 '저런 분이 어떻게 정치를 하시지' 생각할 때가 많았죠. 아버지는 어렸을 때 의사가 될 뻔하다가 전쟁이 터져서 군인이 됐죠. 군인이 자기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뜻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져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정치인의 길을 걷고 대통령까지 됐어요. 아버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을 해야겠다' 이런 성격이 아니었어요. 주어진 운명·사명·숙명을 받아들이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그런 인생을 사셨던 것 같아요."


"대통령 아들도 보통 사람"

재헌씨는 1988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에 미 스탠퍼드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 장교로 군 복무를 한 후에는 미 워싱턴에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다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 비서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1994년 당시 최연소로 고향인 대구 동구을(乙) 지구당 위원장이 됐다. 하지만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터졌고, 재헌씨도 위원장 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2년간 부친의 옥바라지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하나뿐인 아들의 앞길을 막은 것 같아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썼다.


―어릴 때 꿈이 뭐였나요.

"저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불행히도 운동신경이 별로 없었어요. 그 이후에는 특별히 꿈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한때 정치인을 꿈꾸기도 했죠.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조금 해봤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 사회가 정치 지향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아버지 영향도 있어서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게 됐고, 그다음부터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아들이) 차분히 실력을 쌓은 후 언젠가는 못다 한 꿈을 실현하리라는 기대도 해 본다"고 썼던데요.

"아버지께서도 그러셨지만 인생이라는 게 내가 원해서 뭘 정해놓는다고 그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살다 보면 새로운 임무와 사명이 주어지고 그런 거잖아요. 요새 시대가 워낙 빨리 변해가지만 뭐든지 하나 시작해서 제대로 하려면 10년은 걸리는 것 같아요. 제가 한·중 문화교류 일을 한 지 3~4년이 됐으니까 10년 채울 때까지는 이 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선 한·중이 합작해 글로벌 문화 상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돕는 게 현재 제 개인적인 꿈입니다."


―최근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의혹도 나왔죠.

"홍콩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다 문화 관련 중국 사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세운 건 맞아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무산돼 계좌는 전혀 개설하지 않았고 비자금과도 무관합니다. 어찌 됐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게 생각해요. 다시 한 번 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는 걸 또 깨닫게 됐습니다."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본인과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을 받게 되죠.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아들로 사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커다란 의미 없어요. 한국 사회에선 모든 사람이 어느 순간에 좋든 나쁘든 유명인이 될 수 있어요. 지금은 사회의 일원으로, 보통 사람으로 마음가짐 몸가짐을 잘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23/2016092301836.html

bottom of page